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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 기억의 징검다리, 영도대교

영도다리 [사진] [건] (1934-04)

영도대교 도개모습 (1934-04)

한국 최초의 도개교

 길이 214.63m, 너비 18.3m, 높이 7.2m인 영도대교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 4월 20일 착공되어 1934년 11월 23일 준공되었다. 부산시청 남쪽에서 영도의 북서단을 연결하는 국내 최초의 연륙교이자 유일한 일엽식 도개교로서 일제가 대륙 침략을 위한 보급 및 수송로 구축의 일환으로 건설하였다. 처음 명칭은 부산대교였으나, 부산 개항 100주년을 맞아 착공한 부산대교가 준공한 1982년 2월에 영도대교로 개칭되었다.
1935년 다리 위에 전차궤도()를 설치하여 전차를 운행하기도 하였으며, 1분30초~4분에 걸쳐 다리의 한쪽을 들어올려 선박을 지나가게 하는 광경을 하루 6회씩 연출하며 부산의 명물이 되었다. 그러나 1966년 9월 영도구의 인구증가에 따른 교통량의 증가로 도개를 중단하고 전차궤도도 철거되었다.
2003년 안전진단 검사에서 위험등급을 받아 철거 논란을 겪기도 하였으나, 한국 근현대사의 상징적 건축물로 평가되어 2006년 11월 25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되었고, 2007년 확장 복원 공사에 착수하였다. 2011년 4월 완전 철거한 뒤 길이 214.7m, 너비 25.3m의 왕복 6차로로 확장하고, 도개 기능도 복원하여 2013년 7월 준공하였다.

해설참조-두산백과

 아래의 전시는 영도대교 도개의 옛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역사적인 영도대교 개통식 모습, 복원개통식, 영도다리축제 모습 등으로 구성하였다. 출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재승 등이다.

 

 

전쟁의 흔적을 간직한 다리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0년 12월 15~23일. 아군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1군단은 흥남항구를 통해 약 10만명의 피난민을 부산으로 철수시켰다. 영도대교는 이산가족 상봉장소로 유명했다. 실제로 이산가족들은 영도대교에서 많이 상봉했다고 한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다리에서 떨어져 스스로 고단한 삶의 끈을 놓아버리기도 했다. 오늘날의 영도대교는 비록 그 당시의 다리 그대로가 아니지만 영도와 육지를 잇는 육상교통의 중추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여전히 그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 

 

해설참조- 뉴스천지, "[6.25 한국전쟁 65주년] “영도대교에서 만나”… 피난민들의 애환 담긴 부산서 6.25 흔적 찾다", 이혜림기자, 2015.06.27 09:23:29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296434)

 

  아래의 전시는 1950년대 전쟁 중의 영도다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출처는 부산국제건축문화제 조직위원회, 미국국립문서관리청(NARA)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