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1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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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는 예로부터 말 사육장으로 유명하여 목도(牧島)라 부르기도 하였다. 또 이곳에서 사육된 명마가 빨리 달려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 하여 절영도(絶影島)라고 불렸다.
영도의 전경을 담은 사진이다.
영선고갯길 영도대교 희생자 위령탑 [사진] [건] (1950-08-03)
우측 상단에 "RESTRICTED SECURITY INFORMATION"이라는 문구가 도장으로 찍어져 있음.
부산광역시청, 『미국립문서관리청 소장 부산 사진자료집』, 2013
영도에서 본 부산 시가지 [사진] [건] (1968-04-09)
1994년 9월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도에서 본 부산시가지의 전경이다.
영도에서 본 부산 시가지 [사진] [건] (1950년대)
부산광역시 영도군 영도에서 바라 본 부산시가지의 1950년 모습이다.
영도에서 본 부산 시가지 [사진] [건] (1994-09-00)
1994년 9월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도에서 본 부산시가지의 전경이다.
부산대교(영도대교) 왼쪽에 '대교통서'라는 부분을 형광펜으로 표시해 놓았다.
준설 6,912평 이라는 메모가 있다.
영도에 매립구역을 형광팬으로 표시해 놓은 것으로 보임. 영도대교도 보인다.
영도 조내기의 고구마 밭 전경 [사진] [건] (1960년대)
부산지방에서 고구마 재배지로는 오랫동안 절영도와 다대포가 유명했다. 절영도에서 고구마를 처음 재배한 곳은 '조내기'라는 곳으로, 지금 영도구 동삼1동 삼거리 일대이다. 조내기라는 어원에는 '조엄이 가지고 온 고구마를 캐내는 곳'이라 하여 '조내기'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설과 절영도 멍더들 부근(지금 한국해양대학교 소재지 조도의 맞은 편 육지)에 어장이 있으나 조류가 빠지면 해저천탄으로 인하여 간조가 되는 관계로 조락(潮落)한 곳이라고 부르던 것이 변음되어 '조내기'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나룻배로 다닐 떄의 모습. 김삼근, 부산출신독립투사집, 박재혁의사비건립동의회, 1992.
부산 영도(釜山牧之島州岬を望む) [사진] [건] (날짜미상)
목지도(영도)의 전경
목지도(영도)의 전경
좌천동 증산공원에서 바라본 영도 [사진] [건] (1950-09-30)
부산광역시청, 『미국립문서관리청 소장 부산 사진자료집』, 2013
용두산공원에서 바라본 영도 [사진] [건] (1950-09-30)
부산광역시청, 『미국립문서관리청 소장 부산 사진자료집』, 2013
보급기지(55보급창)에서 영도를 바라본 모습 [사진] [건] (1950-10-03)
부산광역시청, 『미국립문서관리청 소장 부산 사진자료집』, 2013
카시이겐타로(향추원태랑) 별장에서 본 영도 [사진] [건] (1950-08-03)
우측 상단에 "RESTRICTED SECURITY INFORMATION"이라는 문구가 도장으로 찍어져 있음.부산광역시청, 『미국립문서관리청 소장 부산 사진자료집』, 2013
부산의 영도 전경(釜山牧之嶋全景) [사진] [건] (날짜미상)
목지도(영도)의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