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컬렉션
×
기록컬렉션은 부산 지역의 역사와 관련하여 그동안 수집하고 기증받은 다양한 기록들을 기록 유형별로 컬렉션으로 구성한 것입니다.
유형별로 어떤 기록이 들어 있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의 컬렉션 링크들 중 원하시는 링크를 클릭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시민 여러분께서 기증하신 기록이 등록되어 있지 않거나 기록 내용에 문제가 있는 경우엔 언제든 아카이브 담당자에게 문의 부탁드립니다.
동래향교 16건
동래향교(東萊鄕校)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에 있는 향교이다. 2013년 5월 8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되었다. 처음 세워진 것이 언제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고려 시대부터 존재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조선 초 유교 교육 진흥책의 일환으로 지방에 향교를 세울 것을 장려하는 태조의 교서를 받들어, 와성(臥城)[1]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38년(1605년)에 중건하였다. 숙종 31년(1705년)에 관노산(官奴山) 아래로 옮겼다가 영조 21년(1745년)에 읍성 동문 밖으로 다시 이건하였다. 정조 9년(1785년)에 내곡동(內谷洞)[2]으로 이전하였으며, 순조 12년(1812년)에 최종적으로 지금의 위치에 옮겨졌다. 국가에서 토지와 서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70인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향교 자체의 교육기능은 사라지고 대신 동인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교학기능을 이어가고 있으며, 평생교육원을 인가받아 한문전문 교육기관으로 역할하고 있다. 1950년 12월 전국유림대회가 개최되어, 동 · 서무에 봉안되어 있던 중국 학자들의 위패를 매안(埋安)하고, 5성(五聖), 송조 2현(宋朝二賢), 해동 18현(海東十八賢)의 위패를 대성전에 봉안하였다. 음력 2월과 8월의 초정일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1985년에 향교의 고문서를 정리하던 도중에 《동래향청고왕록》과 《동래향교고왕록》이 발견되었는데, 조선 후기 동래 지역의 향반(鄕班)들의 동향 연구나 대일(對日) 수출 공작미(公作米) 연구의 기본 사료이자 1784년 동래향교 이건 당시의 상황을 증언해주는 1급 사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두 자료 모두 필사본으로서 유일한 자료이므로 서지학적으로도 귀중한 가치가 있으며 부산(동래)의 지방사, 지역사 연구와 지방교육 연구의 기초 자료로서도 유용하다. 2013년 이 향교는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3]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