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3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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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동 일명 넝마촌이라 불리는 영도다리 밑 가옥을 철거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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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동 일명 넝마촌이라 불리는 영도다리 밑 가옥을 철거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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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있는 40계단의 전경이다. 2004년 40 계단 일대를 정비해 ‘40 계단 문화 관광 테마 거리’로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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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있는 40 계단의 전경이다. 2004년 40 계단 일대를 정비해 ‘40 계단 문화 관광 테마 거리’로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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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있는 40계단의 전경이다. 2004년 40 계단 일대를 정비해 ‘40 계단 문화 관광 테마 거리’로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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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있는 40 계단의 전경이다. 2004년 40 계단 일대를 정비해 ‘40 계단 문화 관광 테마 거리’로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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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있는 40계단의 전경이다. 2004년 40 계단 일대를 정비해 ‘40 계단 문화 관광 테마 거리’로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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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있는 40 계단의 전경이다. 2004년 40 계단 일대를 정비해 ‘40 계단 문화 관광 테마 거리’로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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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1993년 건립된 40계단 기념비이다. 비석은 달걀형의 자연석을 사용하였고, 1993년 경상남도 지리산 계곡을 뒤져 비석으로 쓸 돌을 찾아냈으며, 앞면에 ‘사십 계단 기념비’라고 한자로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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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있는 40 계단과 기념비이다. 실향민의 슬픔과 외로움, 굶주림과 허기를 달래던 곳이자 약속과 만남의 장소였던 40계단을 추억하기 위해 1993년 40계단을 정비하고 기념비를 세워 제막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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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에 조성된 40 계단의 현재 모습이다. 출처 : 부산관광컨벤션뷰로, 부산 과거와 현재(억수로 보고싶데이),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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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계단 대화재 모습이다. 출처 : 『개항백년』, 부산광역시,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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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개관한 40계단 문화관의 전시실이다. 40계단을 중심으로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사회와 생활상을 담은 사진과 생활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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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개관한 40계단 문화관의 전시실이다. 40계단을 중심으로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사회와 생활상을 담은 사진과 생활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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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개관한 40계단 문화관의 전시실이다. 40계단을 중심으로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사회와 생활상을 담은 사진과 생활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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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개관한 40계단 문화관의 전경이다. 중구 문화의 집[3층과 4층]과 40계단 기념관[5층과 6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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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4가 40계단에 있는 문화 관광 테마 거리의 전경이다. 중앙대로에서 골목이 시작되는 입구 상징적인 평화의 문을 들어서면 옛 부산역을 상징하기 위하여 총 길이 140m의 기찻길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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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4가 40 계단에 있는 문화 관광 테마 거리의 전경이다. 국민은행 중앙동지점에서부터 40계단을 거쳐 40계단 문화관과 팔성관광까지의 약 450m가량에 이르는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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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4가 40계단에 있는 문화 관광 테마 거리의 전경이다. 철도 레일과 신호기, 조각상 등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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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4가 40계단에 있는 문화 관광 테마 거리의 전경이다. 국민은행 중앙동지점에서부터 40계단을 거쳐 40계단 문화관과 팔성관광까지의 약 450m가량에 이르는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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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4가 40계단에 있는 문화 관광 테마 거리의 전경이다. 41계단 아래쪽의 기찻길을 따라 노동에 지쳐 잠시 쉬는 형태인 「아버지의 휴식」, MBC 상징 조형물[우리나라 최초의 상업 방송 전파가 발송되었던 자리에 설치] 등 다양한 조각상들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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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부터 1912년에 조성된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있는 40계단의 1953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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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4가 40계단에 있는 문화 관광 테마 거리의 모습이다. 40계단 문화 관광 테마 거리는 국민은행 중앙동지점에서부터 40계단을 거쳐 40계단 문화관과 팔성관광까지의 약 450m가량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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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명세 감독 作/1999)의 첫 장면에 40계단이 등장한다.일명 '40계단 살인사건'장면
40계단은 1950년 6·25 피난시절 교통·행정의 중심지였던 부산중구에 위치하여 많은 피난민들이 그 주위에 판잣 집을 짓고 밀집해서 살았었고 바로 앞 부두에서 들어오는 구호물자를 내다 파는 장터로, 그리고 피난 중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장소로 유명했던, 피난살이의 애환을 상징하던 곳이었다.
출처 : 부산중구 40계단 문화관 http://40stair.bsjungg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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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명세 감독 作/1999)의 첫 장면에 40계단이 등장한다.일명 '40계단 살인사건'장면
40계단은 1950년 6·25 피난시절 교통·행정의 중심지였던 부산중구에 위치하여 많은 피난민들이 그 주위에 판잣 집을 짓고 밀집해서 살았었고 바로 앞 부두에서 들어오는 구호물자를 내다 파는 장터로, 그리고 피난 중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장소로 유명했던, 피난살이의 애환을 상징하던 곳이었다.
출처 : 부산중구 40계단 문화관 http://40stair.bsjungg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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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명세 감독 作/1999)의 첫 장면에 40계단이 등장한다.일명 '40계단 살인사건'장면
40계단은 1950년 6·25 피난시절 교통·행정의 중심지였던 부산중구에 위치하여 많은 피난민들이 그 주위에 판잣 집을 짓고 밀집해서 살았었고 바로 앞 부두에서 들어오는 구호물자를 내다 파는 장터로, 그리고 피난 중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장소로 유명했던, 피난살이의 애환을 상징하던 곳이었다.
출처 : 부산중구 40계단 문화관 http://40stair.bsjungg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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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명세 감독 作/1999)의 첫 장면에 40계단이 등장한다.일명 '40계단 살인사건'장면
40계단은 1950년 6·25 피난시절 교통·행정의 중심지였던 부산중구에 위치하여 많은 피난민들이 그 주위에 판잣 집을 짓고 밀집해서 살았었고 바로 앞 부두에서 들어오는 구호물자를 내다 파는 장터로, 그리고 피난 중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장소로 유명했던, 피난살이의 애환을 상징하던 곳이었다.
출처 : 부산중구 40계단 문화관 http://40stair.bsjungg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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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계단은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는 뚜렷하지 않다. 다만 중앙동 일대를 1908년 매립해 그 당을 '새마당'이라고 명명했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현재 40계단 문화관이 위치한 언덕길에서 새마당으로 내려가는 계단도 그 때 생기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다. 1953년 부산역 대화재 대 판자촌 대부분이 불타 없어지고 새로이 주거지가 형성되면서 40계단은 본래 위치에서 영주동 쪽 25M 떨어진 현재 위치에 새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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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명세 감독 作/1999)의 첫 장면에 40계단이 등장한다.일명 '40계단 살인사건'장면
40계단은 1950년 6·25 피난시절 교통·행정의 중심지였던 부산중구에 위치하여 많은 피난민들이 그 주위에 판잣 집을 짓고 밀집해서 살았었고 바로 앞 부두에서 들어오는 구호물자를 내다 파는 장터로, 그리고 피난 중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장소로 유명했던, 피난살이의 애환을 상징하던 곳이었다.
출처 : 부산중구 40계단 문화관 http://40stair.bsjungg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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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명세 감독 作/1999)의 첫 장면에 40계단이 등장한다.일명 '40계단 살인사건'장면
40계단은 1950년 6·25 피난시절 교통·행정의 중심지였던 부산중구에 위치하여 많은 피난민들이 그 주위에 판잣 집을 짓고 밀집해서 살았었고 바로 앞 부두에서 들어오는 구호물자를 내다 파는 장터로, 그리고 피난 중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장소로 유명했던, 피난살이의 애환을 상징하던 곳이었다.
출처 : 부산중구 40계단 문화관 http://40stair.bsjunggu.go.kr